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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돌이: 가출 소년 장구 명인되다

metak 2025. 3. 12. 07:04

1987년 대한민국은 민주화의 열망이 거센 시기였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 조치'에 맞서 전국의 대학가는 격랑에 휩싸였고, 그 한복판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영화 <정돌이>의 주인공입니다. 어린 나이에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한 소년이 우연히 대학가의 민주화 투쟁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야기, 함께 살펴볼까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흘러든 소년

 

1987년 봄, 14살의 송귀철 소년은 경기도 연천에서 아버지의 음주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와 서울 청량리역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 경찰에 수배된 고려대 서정만 학생이었죠. 이 만남이 송귀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이 수배 학생은 소년을 데리고 고려대학교로 향했고, 소년은 정경대 학생회실에서 머물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정돌이'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고, 대학생 형과 누나들은 그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정돌이가 고대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감정은 어땠을까요? 인터뷰에서 그는 '이제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시위와 최루탄이 난무하는 대학가에서 소년은 안전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따뜻한 공동체의 품속에서

 

정돌이에게 대학생 형, 누나들이 가장 많이 건넨 말은 "밥 먹었니?"였다고 합니다. 그는 하루에 여섯 끼를 먹기도 했다고 하네요. 가정에서 받지 못했던 따뜻함을 대학가의 운동권 학생들 속에서 찾은 것이죠.

 

"학교는 조용하더라고요. 거기는 난리 났는데 80년 광주도 연상이 되고. 그게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거니까. 끌려 나올 때 다 허리춤 잡고 이렇게 끌려 나왔거든요. 전 그 와중에 담벼락 넘겨준 거고 백골단이. 그 분은 감사합니다."

 

이는 정돌이가 구로구청 투쟁 현장에서 백골단(경찰 진압부대)과 마주쳤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를 담벼락 너머로 보내준 백골단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당시 14살 소년의 눈에 비친 1987년 민주화 운동의 현장은 얼마나 혼란스럽고 두려웠을까요?

 

6월 항쟁과 함께한 청소년

 

1987년 4월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로 대학가는 격랑에 휘말리기 시작했습니다. 6월이 되자 정돌이는 형, 누나들을 따라 6월 항쟁에 참여했습니다. 단순 참여가 아니라 1987년 12월 대선 개표부정과 관련한 구로구청 투쟁에도 참여할 정도로 운동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당시 성북경찰서 형사들은 "정돌이만 잡으면 고려대 운동권 조직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어린 소년이 고려대 정경대의 마스코트이자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던 것이죠.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한 소년이 이렇게 깊이 관여하게 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롭습니다.

 

장구의 길로 이끈 인연

 

정돌이는 대학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장구에 대한 소질이었습니다. 그는 고려대 농악대의 일원이 되어 공연에 참여하고 북을 들고 시위대 앞에 서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장구를 본격적으로 연마하기 시작했고, 훗날 정돌이 - 송귀철은 장구 명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는 '미르'라는 풍물패를 이끌고 있으며, 호남좌도임실필봉농악, 채상소고, 웃다리평택농악, 호남우도농악 등 다양한 농악을 사사받은 전문가로 성장했습니다. 가출 소년에서 장구 명인으로의 변신, 그 속에는 그를 따뜻하게 품어준 대학생들과의 인연이 있었던 것입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든 따뜻한 연대

 

영화 <정돌이>는 단순히 한 소년의 성장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어려운 시기에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송귀철 씨는 인터뷰에서 사회운동과 장구 연주가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든든하게 품어주기"  

 

이 표현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잘 담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이 정돌이를 품어주었고, 훗날 장구 명인이 된 정돌이는 운동권 활동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고대생들을 자신의 집에서 재워주며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준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연대의 가치

 

김대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정돌이>는 1987년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14살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독특한 시선을 제공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민주화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세력들 때문에 심신이 피곤해진 요즈음, 잊혀져 가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14살 소년 정돌이의 눈으로 다시 돌아본다."라는 영화의 소개말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이 영화가 갖는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2025년 2월에 개봉한 이 영화는 각종 독립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으며, 관객과의 대화 행사도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기고, 인간적인 연대의 중요성을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꼭 관람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역사의 한 장면이 된 14살 소년의 이야기, <정돌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품어줄 때 희망이 피어날 수 있음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는 한 인간의 성장을 목격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