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대화

한강과 알베르 카뮈

metak 2025. 3. 12. 07:09

 

서울의 한 카페, 창밖으로 한강이 흐르고 있다. 한강 작가와 알베르 까뮈가 마주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는 두 잔의 아메리카노와 『채식주의자』와 『페스트』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한강: (미소 지으며) 까뮈 선생님,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특히 『시지프 신화』에서 말씀하신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반항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어요.

 

카뮈: (고개를 끄덕이며) 한강 씨의 작품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라는 인물이 사회의 폭력에 대항하는 방식이 독특했어요. 자신의 몸을 통해 저항하는 그 모습이 시지프의 또 다른 형태처럼 느껴졌습니다.

 

한강: 영혜는 식물이 되려 했어요. 인간의 폭력성에서 벗어나 가장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결국 그 선택도 일종의 폭력이 되어버렸어요. 그녀의 가족들에게, 그리고 그녀 자신에게도요.

 

카뮈: (커피를 마시며) 흥미롭군요. 제가 『이방인』에서 묘사한 뫼르소도 비슷합니다. 사회의 규범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는 괴물이 되어버렸죠. 하지만 저는 그가 진실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떤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강: 진실을 직면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요. 『소년이 온다』를 쓸 때 5.18 광주의 참상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때로는 그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어요.

 

카뮈: (진지하게) 그래서 당신의 작품이 더욱 값진 겁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페스트』를 쓸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를 페스트라는 메타포로 표현하면서,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지 질문했죠.

 

한강: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항상 희망의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리 어두운 상황에서도요. 하지만 저는 때로 그 희망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잔혹함을 목격할 때마다요.

 

카뮈: (창밖을 바라보며) 제가 말하는 희망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지프 처럼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과 같지요. 그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강: (생각에 잠겨) 『흰』을 쓸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죽음과 상실 속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빛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요. 어린 조카의 죽음이라는 어두운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삶의 연약함과 그 안에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카뮈: 그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반항'입니다. 죽음과 부조리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요. 인간의 조건을 받아들이되, 그 한계 안에서 최대한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죠.

 

한강: (미소 지으며) 『인간의 조건』... 그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카뮈: (웃으며) 그건 사실 말로의 책입니다만, 제목은 정말 적절하군요.

 

한강: (웃음) 제가 혼동했네요. 하지만 그 표현이 우리 대화의 핵심을 잘 담고 있어요. 인간의 조건—유한하고, 연약하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그 안에서 어떻게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까요?

 

카뮈: 저는 연대의 힘을 믿습니다. 『페스트』에서 리외 의사가 보여준 것처럼,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강: 연대... 『소년이 온다』에서도 그것이 중요한 주제였어요.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연대의 형태였습니다.

 

카뮈: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하는 행위, 그것도 중요한 반항의 형태지요. 역사의 어두운 면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미래의 비극을 막는 방법일 수도 있으니까요.

 

한강: 하지만 때로는 그 기억이 너무 고통스러워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밤마다 악몽을 꾸었습니다.

 

카뮈: 그래도 당신은 그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고통스러워도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지요.

 

한강: (잠시 침묵 후) 선생님은 어떻게 글을 쓰셨나요? 저는 항상 고통과 함께 씨름하며 씁니다.

 

카뮈: (미소 지으며)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일종의 구원이었어요. 시지프가 바위를 밀어 올리듯, 저는 단어들을 모아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종의 자유를 경험했지요.

 

한강: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아무리 어두운 내용을 다루더라도,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내는 순간 어떤 해방감을 느끼곤 합니다.

 

카뮈: 바로 그것입니다! 부조리한 세계 앞에서도 우리는 창조를 통해 자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술가의 특권이자 책임이지요.

 

한강: (창밖을 바라보며) 한강을 보니 생각나는데, 선생님의 『이방인』에서 바다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죠. 저에게도 물은 중요한 이미지예요. 『소년이 온다』에서는 죽음과 정화의 상징으로, 『채식주의자』에서는 생명의 근원으로 물이 등장합니다.

 

카뮈: 물은 참 아름다운 상징이지요. 끊임없이 흐르면서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는 존엄성의 모습과도 비슷할지 모릅니다.

 

한강: (미소 지으며) 이렇게 대화를 나누니 새로운 영감이 떠오릅니다.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힘인 것 같아요.

 

카뮈: (잔을 들어 올리며) 그럼 문학의 힘에 건배합시다. 그리고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우리의 용기에도요.

 

한강: (자신의 잔을 들어 마주치며) 인간의 존엄성을 위하여.

 

두 작가는 창밖으로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각자의 시대와 문화를 넘어선 깊은 교감을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