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한 산골 마을에 사는 김할머니(78)는 심장 질환이 있어 정기적인 진료가 필요하지만, 지역 내 심장내과 전문의가 없어 매번 100km 이상 떨어진 대도시 병원까지 가야만 한다. 이런 상황은 비단 김할머니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 주민들은 필수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25년 7월부터 '계약형 지역 필수의사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지역필수의사제는 의사가 필수과목(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신경과, 신경외과)을 진료하며 지역 의료기관에서 장기간 근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다. 정부는 지역별로 24명씩, 총 96명의 전문의에게 월 4백만 원의 지역 근무수당과 지자체가 마련한 정주 혜택을 제공할 계획이며, 시범사업 지역으로 강원, 경남, 전남, 제주 등 4개 지역을 선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지역의사제'가 의무 근무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방식인 반면, 지역필수의사제는 계약을 통해 자발적 선택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과연 지역 간 의료 격차 해소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2019년부터 시행 중인 유사한 공중보건장학제도의 경우, 의대생 모집정원 100명 중 52명만이 선발되는 등 낮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의대 졸업생들이 지역 근무를 기피하는 현상은 이미 확인된 바 있는데, 최근 5년간(2017~2021년) 지역대학 의학계열 졸업자 1만 3743명 중 43.1%가 수도권으로 취업했고, 지역 대학 소재지에 남은 비율은 30.3%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히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의 접근이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장종태 의원은 "정부는 계약형 필수의사제를 통해 지역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공공임상교수제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가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정주여건과 해외연수 등 지원책을 발표하면서 그 비용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역시 "의료취약지에 제대로 된 의료기관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윤을 우선하지 않는 공공의료기관이 아니면 민간의료기관은 아예 생길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역필수의사제가 '지역의료자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강준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장은 "해당 제도는 지자체 역할이 함께 결합돼야 하는 부분"이라며 "지역에서 인력이나 인프라에 대해 자기 책임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기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권병기 보건복지부 필수의료지원관도 "지역필수의사제 시범사업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료기관과 협력하여 사업계획서를 수립하여 지역 상황에 맞는 지원체계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강조했다.
지역필수의사제는 지역 의료 불균형 해소를 위한 첫 발걸음일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위해서는 더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히 의사 수급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 의료기관의 인프라 확충, 지역 특성에 맞는 의료 서비스 개발, 그리고 지역사회와 의료계 간의 유기적인 협력 체계 구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비용 분담 문제를 명확히 하고, 지역 의사들에게 경력 개발의 기회를 제공하며, 가족 단위로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종합적인 노력 없이는, 지역필수의사제가 또 하나의 임시방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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